2025년 6월 30일, LY Corp 테크 컨퍼런스인 Tech-Verse 2025에서 1년간 개발해온 Flava IAM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발표를 준비하며 느낀 점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발표한 Flava IAM 자체에 대한 설명은 발표 세션 페이지에서 슬라이드 쇼와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기술 발표에 대한 생각
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시행착오를 공유하는 이야기는, 제가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길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에 더 흥미롭습니다. 기술 발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적 시행착오는 필연적으로 많은 시간이 드는 과정이고, 해결법은 그 사람의 경험과 고민이 집약된 결과이기 때문에, 관심 있는 주제라면 항상 챙겨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발표를 하는 건 큰 부담이었습니다. 먼저 기술 발표는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일을 얘기하면 그것은 곧 회사의 일이 되고, 개인적인 성취를 이야기하더라도, 혼자 쓰고 아무도 안 읽어도 괜찮은 블로그 글과 달리, 발표는 일반적으로 여러 사람이 개입해서 자리가 마련되기 때문에, 준비를 도와주는 사람들과 청중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 동안 발표를 할 기회가 종종 있었지만, 그때마다 망설이다가 결국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발표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 첫째, Flava IAM의 백엔드가 되는 Athenz의 개념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아는 오픈소스라면 아마 굳이 발표를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이를 조금만 풀어서 설명해주면 인증/인가를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사내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 둘째, 만 5년의 커리어 중 가장 적극적으로 많은 비중을 갖고 개발한 제품이고,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제품이었기에 이를 한 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개발한 제품으로도 발표를 안하면 앞으로 그 어떤 발표도 평생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민끝에 목차만 가볍게 정리한 상태에서 발표자 모집에 지원했고, 생각보다 경쟁률이 있었지만 운 좋게 발표자로 선정됐습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신경썼던 점
하나라도 제대로 전달하자
어떤 내용을 발표할지, 구조를 처음 설계할 때는 욕심이 많았습니다.
- 우선 Athenz가 무엇인지 소개하고, 세부 기능을 설명하고,
- 기존 사내 Cloud IAM과 달라진 점과 개선점도 이야기하고,
- 기술적·기획적으로 도전적이었던 부분을 전부 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을 담으니 30분으로는 끝나지 않을 발표가 되어버렸습니다. 무엇보다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보니, 발표 시간 안에 청중이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특히 IAM 개발 자체가 생소하다 보니,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발표가 끝난 뒤에도 “그래서 Athenz를 만든 거냐”는 식의 피드백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발표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구나 새삼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기능적으로 모든 것을 전달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청중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단 한 가지 메시지라도 기억하게 만들자는 방향으로 수정했습니다. 이 발표에서 그 메시지는 "Flava IAM은 균형잡힌 중개자를 지향했다"였습니다. 권한 부여 과정에서 사용자와 공급자의 흐름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과거 대비 개선된 점을 짚는 방식으로 구조를 바꿨습니다. 꼭 전달하고 싶은 하나의 메시지가 정해지다보니, 왜 이게 중요했는지, 이를 어떻게 달성했는지, 달성하면서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등을 소개하는 식으로 발표가 정리됐고, 발표 구성이 처음보다 명료해졌습니다.
과거를 존중하자
또 하나 신경 쓴 점은 오만한 발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Cloud IAM을 그대로 쓰지 않은 것은 분명 개선할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새로 만든 제품이 모든 면에서 우월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었을 것이고, 그 가치는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발표에서는 기존 플랫폼의 장점과 그 가치를 계승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제목의 보안성과 사용성은 기존 플랫폼이 갖고 있던 장점을 의미합니다. 기존 제품의 아쉬웠던 점에 대해서도, 그것이 단순히 아쉬운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음을 설명하고, 이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표를 구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제품들의 기획서, 사양서 등을 다시 살펴보기도 했는데요, 개발이 다 끝나고 나서 "그래서 이렇게 구현했었구나" 하고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어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침 발표를 준비하는 다른 동료분께서도 "경위에는 경의를 표하자"며 다음 발표를 소개해주셨는데요, 완전히 같은 마음이라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발표와 AI
이번 발표를 준비하며 ChatGPT를 비롯한 AI 도구도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2025년 상반기 시점에서는 생각보다 도움이 되진 않았습니다. 발표 전체를 AI로 만든다는 사례도 종종 들었던지라, 혹시 대본만 주면 PPT를 만들어줄까? 싶었는데, 막상 간단한 도표도 기대대로 못만들어 완성된 발표 자료에 AI가 내용적으로 개입한 부분은 극히 일부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직 인간이 할 일이 남아있구나 싶어서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균형잡힌 중개자’라는 키워드를 정할 때였습니다. Flava IAM이 권한 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플랫폼에서 보안성과 자율성은 동시에 신경썼다는 점인데요, 이 부분을 키워드로 각인시키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독재’와 ‘무정부주의’를 대비시키며, IAM이 권한을 무분별하게 부여해서도, 모든 권한을 과도하게 통제해서도 안 된다고 표현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발표용으로 다소 거칠었기에 LLM에 대안을 요청했는데,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권한 관리 관련 예시만 무더기로 제시해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좀 더 비유적으로 멋진 표현이 있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AI는 입력의 밀도가 높고 지시가 명확하면 유용했습니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말한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거나, 대본의 어색한 표현을 세련되게 다듬어주었습니다. 발표 준비 과정에서 걱정되는 부분을 상담하면 심리적으로도 도움을 받았고, 놓친 포인트를 제안해 주기도 했습니다. 또, 슬라이드를 영어로 준비했는데 번역에 있어서는 정말 가장 든든한 파트너였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그렇게 약 1달 간 발표를 준비하고, 무대에 올랐고, 무사히 마쳤습니다. 연습 때는 30분이 길게 느껴졌지만, 막상 발표를 시작하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제품을 대표해 발표하는 자리였기에 함께 만든 동료들에게 누가 되지 않길 바랐고, 다행히 많은 응원과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긴밀하게 협업했던 Athenz 팀에서 “덕분에 Athenz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발표 준비 과정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의 의미를 다시 정리할 수 있었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제품의 가치와 방향성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개발하며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발표를 준비하며 다른 시각으로 돌아보니 제품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개선 과제가 남아 있는 만큼, 이번에 다잡은 생각을 바탕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려 합니다.
비슷한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발표를 통해 경험을 다시 정리하고 공유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발표를 고민하고 계신다면 꼭 한 번 도전해 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이 될 것입니다.
그 외
- 발표는 일본 도쿄 기오이초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됐습니다. 일본 청중 앞에서 영어 슬라이드에 한국어로 발표하는 귀중한 경험을 했지만, 일본어 통역 문제로 많은 부분이 누락됐다고 합니다. 다음에 비슷한 기회가 있다면 일본어로 직접 발표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올해 2월에 태어난 아이를 안고 새벽에 PPT를 수정하던 날들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