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을 배우며

June 12, 2026

복싱을 시작한 지 어느덧 8개월이 됐습니다. 8개월이라는 시간이 아주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스텝부터 스파링까지 복싱을 하면서 한 번쯤 겪게 되는 과정은 대회 정도를 빼면 어느 정도 돌아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쯤 한 번 정리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운동을 정말 싫어하는 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운동에 필요한 의지력이 많이 약합니다. 뭔가를 능동적으로 하기보다는 차라리 안 하는 쪽이 더 쉬운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몸 관리는 주로 식단으로 해왔습니다. 군것질을 줄이고, 몸에 안 좋은 음식을 피하는 식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운동을 싫어했을까 생각해보면, 일단 운동신경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살아오면서 잘하는 운동이 딱히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것저것 배우기는 했습니다. 헬스, 테니스, 수영, 탁구, PT, 의외로 택견도 해봤습니다. 그나마 오래 한 건 수영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하는 운동은 제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고, 혼자 하는 운동은 너무 심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운동을 하든 결국 억지로 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복싱을 시작하게 된 계기

그러다 육아를 하면서 체력이 부족하다는 걸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체중도 늘었고, 자세도 안 좋아졌고, 전반적으로 몸이 낡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식단 관리만으로는 도저히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생존을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슬프지만.

무슨 운동을 할지 고민하다가 제미나이와 상담하듯 이것저것 비교해봤습니다. 처음에는 탁구를 추천해줬는데,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다른 운동을 추천 받은 게 바로 복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일 체험을 하러 갔습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은, 살짝 내공이 느껴지는 연식의 체육관에는 젊은 여자 코치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먼저 10분 정도 가볍게 런닝 머신 위에서 걷고, 제가 가진 선입견 그대로 줄넘기를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스텝을 배웠습니다. 기억하기로 그날은 잽 한 번 해보지 않고, 가드만 올린 채 스텝만 밟다가 끝났습니다.

사실 펀치를 한 번도 안 했으니 재미없다고 느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왜 줄넘기를 하는지, 왜 스텝을 먼저 배워야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링 위에서 숨 쉬는 법을 먼저 가르쳐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올드스쿨 스타일의 체육관이라는 느낌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한 달은 다녀보기로 했습니다.

예상대로 체육관은 꽤 올드스쿨이었습니다. 거의 자율학습에 가까웠습니다. 코치님이 돌아다니면서 진도를 봐주시고, 새로 배운 것을 알려주면 그걸 가지고 알아서 쉐도우를 하고 샌드백을 치는 식이었습니다.

체육관은 주중에만 열었고, 저도 아이를 봐야 하다 보니 보통 주 2~3회 정도 나갔습니다. 그래도 작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완전히 쉰 주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꽤 큰 일입니다.

배우는 재미

처음에는 잽을 배웠고, 그다음에는 원투를 배웠습니다. 바디잽도 배우고, 하나씩 기술을 익혀갔습니다. 매일매일 스킬을 찍는 기분이라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다른 관원들이 스파링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익히고 있는 기술들이 실제로 어떻게 쓰일지 계속 상상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유튜브 영상도 많이 찾아보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운동 영상을 이렇게 열심히 볼 일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복싱 영상을 보고 있는 시간이 꽤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4개월쯤 됐을 때 드디어 스파링을 해봤습니다. 그전까지 유튜브와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머릿속에서는 한 100라운드쯤 해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링 위에 올라가니 생각과 너무 달랐습니다.

움직이는 상대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피하는 건 한 번도 제대로 연습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긴장해서 호흡을 까먹었고, 의미 없이 스텝을 밟다 보니 체력도 금방 바닥났습니다. 2라운드 스파링이었는데, 결국 2라운드째에는 머리는 텅 비고 손은 후들후들 거리는 상태로 공격은 커녕 가드도 제대로 못 하고 내려왔습니다. 집에 와서도 한참을 누워서 숨을 골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경험이 너무 좋았습니다. 1라운드 때는 그래도 머릿속으로 다짐했던 것들이 아주 부분적으로나마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잽으로 거리를 재야겠다든지, 바디도 쳐봐야겠다든지 하는 생각이 실제 상황과 조금씩 연결됐습니다. 반대로 거리를 잘못 쟀으면 빠지고 밸런스를 다시 잡아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도 몸으로 알게 됐습니다.

그때 비로소 피드백 루프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됐고, 그걸 위해 무엇을 연습해야 할지도 조금 보였습니다. 그게 또 즐거웠습니다.

그 이후로도 종종 스파링을 했습니다. 확실히 스파링 체력은 조금 늘었습니다. 이제는 3라운드까지는 어떻게든 운영해볼 수 있겠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언제 힘을 주고 언제 힘을 빼야 하는지도 조금씩 생각하게 됐습니다. 다만 여전히 고수들과 매칭되면 제대로 유효타를 못 날리고 맞는 게 더 많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내게 맞았던 방식

복싱의 매력이라고 하면 간지가 난다거나, 격투기라 호신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점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은 조금 다릅니다. 복싱은 제게 단체운동과 개인운동 사이 어딘가에 있는 운동처럼 느껴졌습니다. 느슨하게 연결된 운동이라고 해야 할까요.

단체운동의 대표적인 예로 크로스핏이 있고, 개인운동의 대표적인 예로 헬스가 있다고 치면, 제가 다니는 체육관은 일단 헬스에 가깝습니다. 알아서 와서, 알아서 연습하고, 알아서 집에 갑니다. 누가 동시에 같은 메뉴를 강제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모두가 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건 3분 운동, 30초 휴식이라는 라운드의 호흡입니다. 공이 울리면 다 같이 운동하고, 다시 공이 울리면 다 같이 쉽니다. 제가 쉬는 시간과 다른 사람이 쉬는 시간이 같고, 제가 운동하는 시간과 다른 사람이 운동하는 시간이 같습니다.

또 하나는 모두가 같은 운동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자의 목적은 다르지만, 어쨌든 복싱이라는 운동 아래에서 비슷한 루틴을 반복합니다. 러닝, 줄넘기, 쉐도우 복싱, 샌드백, 스파링, 근력 운동을 각자의 속도로 해나갑니다. 잘하든 못하든, 많이 하든 적게 하든, 결국 링 위의 시합을 위해 모두가 준비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서로의 움직임이 보이는 공간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자극이 되는 느낌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크로스핏처럼 여러 명이 동시에 하나의 기준을 따라 운동하는 건 아니라서 압박은 적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강도/속도로 할 수 있고, 필요할 때 코치님이 각자에 맞게 미트나 코칭으로 도와주십니다. 물론 이런 체육관만 있는 건 아니고, 크로스핏에 가까운 복싱장이나 단체운동식 복싱장도 많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제 경우에는 이 방식이 아주 잘 맞았습니다.

성과

성과를 숫자로만 말하면 체중은 6kg 정도 줄었습니다. 한 달에 1kg도 안 빠진 셈이라 그렇게 큰 변화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체지방만 10kg 빠져 인생 처음으로 체지방률이 20%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운동 외에 식단도 크게 작용했는데, 아무래도 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한 게 아까워서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더 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자세도 조금 좋아졌습니다. 특히 굽은 어깨와 관련된 부분이 나아진 것 같습니다. 훅을 연습할 때 어깨가 굽어 있으면 동작이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거의 두 달은 훅만 연습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깨 가동성이나 자세가 확실히 좋아졌다고 느낍니다.

체력이 좋아졌는지는 사실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육아는 힘듭니다. 다만 줄넘기는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 처음에는 1라운드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예전보다 훨씬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몸이 조금은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소소하지만 어디가서 복싱을 한다고 하면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아이스 브레이킹에 유용하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마치며

사실 어려울 때도 많았습니다. 스파링 내내 맞기만 했을 때. 두 달 내내 가동성이 떨어지는 어깨로 훅만 연습했을 때. 체지방률 정체기에 한참 머물러서 답답했을 때. 그래도 진부하지만, 꾸준히 하는 건 배신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그러니까 방향만 맞으면 결국은 몸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생각보다 덜, 또 가끔은 생각보다 많이.

요즘은 체육관에서 아는 얼굴들도 꽤 많아졌습니다. 최근 아내가 복직한 이후로는 스파링은 줄이고 기술 연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 아이를 혼자 보는게 아직 익숙치 않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이 보는 일이 조금 더 익숙해지면 다시 궤도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무리해서 속도를 올리기보다는, 끊기지 않게 다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정리해보면, 복싱은 제가 처음으로 꾸준히 하고 싶다고 느낀 운동입니다. 너무 늦게 발견한 건가 싶다가도, 이제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오래 해보고 싶습니다.

그 외

  •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이어트와 관련된 부분은 식단도 함께 관리한 게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다이어트 도시락이 큰 도움이 됐는데, 육아하면서 식단을 따로 챙기기 어려운 차에 전자레인지 7분으로 간편/건강 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것저것 먹어봤는데 메이크샐러드 도시락을 가장 추천합니다.